[넥스트포스트=박해도 전문위원] 경쟁 관계였던 국내 4대 엔터테인먼트사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 JYP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가 사상 처음으로 합작법인 설립에 나섰다. 글로벌 음악 페스티벌을 공동 기획하고 운영하기 위한 목적이다.
이번 협력은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와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이 위원회는 지난해 10월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출범식을 열고 세계 최고 수준의 K팝 공연장을 짓고 코첼라를 뛰어넘는 페스티벌을 기획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간의 창의성을 보장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팔길이 원칙을 강조하며 정책과 산업을 잇는 민관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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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법인의 이름은 팬을 뜻하는 '팬'과 현상을 뜻하는 '피노메논'을 합친 '패노메논'으로 정해졌다. 팬덤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파급력을 행사의 핵심 동력으로 삼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하이브가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에 해당하고 SM엔터테인먼트 역시 카카오그룹 소속 대기업집단 계열사인 만큼 새 법인 설립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거쳐야 한다. 4사가 동일한 지분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대표이사 구성이나 세부 지배구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구체적인 행사 일정도 나왔다. 국내 첫 행사는 2027년 12월 2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창동 서울아레나와 고양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다. 서울아레나에서는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아티스트들의 콘서트와 함께 팬덤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다. 한 해 동안 가장 활발한 활동과 영향력을 보인 팬덤 10곳을 데이터에 기반해 선정하고, 소속 아티스트가 이들을 대신해 상을 받는 방식이다. 팬을 시상의 주체로 세우는 형식은 기존 음악 시상식과 차별화되는 지점으로 꼽힌다.
해외 진출 계획도 함께 공개됐다. 2028년 5월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코첼라와 유사한 형태의 해외 패노메논 페스티벌을 여는 방안이 추진된다. 국내 행사가 팬덤 시상식과 공연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면 해외 행사는 세계 주요 도시에서 케이컬처를 알리는 음악축제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위원장은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첫 행사를 선보이겠다는 일정을 이미 공개한 바 있다.
위 사진은 본문과 관계없음/Pexels
이번 합작이 이례적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4사가 그동안 아티스트 캐스팅과 콘텐츠 제작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온 구도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K팝을 개별 기획사의 콘텐츠 상품을 넘어 하나의 글로벌 이벤트 지식재산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해석하는 시각이 나온다. 정부가 K컬처를 한국 경제의 미래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방향을 밝힌 만큼, 패노메논은 K팝 공연을 국가 대표 공연 지식재산으로 키우려는 정책 실험의 성격도 지닌다.
다만 성패를 가늠하는 기준은 톱스타를 얼마나 많이 무대에 세우느냐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팬과 아티스트, 대형 기획사와 중소 기획사, 주류 장르와 비주류 장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시험대로 꼽힌다. 대형사 중심의 합작 구조가 자칫 산업 전반의 다양성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와 향후 법인 지배구조가 어떻게 확정되는지가 프로젝트의 실행력을 가늠하는 다음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