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포스트=이종균 기자] 르완다 영화 '벤이마나'가 칸국제영화제에 이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북미 관객을 만났다. 1994년 르완다 집단학살의 기억을 개인과 가족의 삶으로 끌어온 작품으로, 아프리카 여성 감독의 시선과 르완다 영화의 성장 가능성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벤이마나'는 르완다 감독 마리클레망틴 뒤사베잠보의 장편 데뷔작이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공식 부문에 초청되며 르완다 감독의 작품으로는 처음 칸 공식 선정작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이달 10일부터 20일까지 열리는 토론토국제영화제 센터피스 프로그램에 초청됐다.
영화는 1994년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베네란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폭력의 기억을 딛고 공동체의 화해와 치유에 힘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10대 딸의 임신을 계기로 억눌러뒀던 과거와 마주하면서 용서와 회복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감독은 대규모 학살의 참상을 직접 재현하는 대신 사건 이후에도 계속되는 일상과 세대 간 상처에 시선을 둔다. 생존자가 사회적 화해를 말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공동체의 회복이 단순한 선언으로 끝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품의 중심에는 여성들의 경험이 있다. 국가적 비극을 거대한 정치 서사로 다루기보다 어머니와 딸의 관계, 가족과 마을 공동체 안에서 이어지는 감정으로 풀어냈다. 집단학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이어받는지도 영화의 중요한 질문이다.
뒤사베잠보 감독은 단편영화를 통해 르완다 사회의 여성과 청소년, 역사적 기억을 꾸준히 다뤄왔다. 장편 데뷔작에서도 비전문 배우와 현지 언어, 르완다의 생활공간을 활용해 공동체 내부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담았다.
'벤이마나'의 국제영화제 진출은 르완다 영화산업에도 의미가 있다. 아프리카 영화가 국제무대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일부 국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작품은 상대적으로 제작 기반이 작은 르완다에서도 지역 고유의 역사와 언어를 바탕으로 세계 관객과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영화의 국제 진출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외부 관찰자의 시선으로 대륙의 비극을 설명하기보다 현지 창작자가 자신의 사회를 직접 해석하는 작품이 늘고 있다. '벤이마나'는 르완다의 상처를 다루면서도 기억과 용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라는 보편적인 질문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넥스트포스트 이종균 기자 jay@next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