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포스트=이종균 기자] 통신사가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 하나가 아프리카 대중음악의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범아프리카 재능 발굴 시리즈 '이아프리카(Y'Africa)'가 네 번째 시즌을 맞아 아프리카 음악 전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난달부터 북아프리카 3개국 방송망을 새롭게 끌어들였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통신사업을 운영하는 오랑주그룹이 제작하는 이 시리즈는 올해 7월부터 모로코의 2M, 튀니지와 이집트의 국영 방송사를 방영망에 추가했다. 마그레브 지역 전체와 이집트까지 방송 권역을 넓힌 셈이다. 2M은 모로코에서 가장 많이 시청되는 채널 중 하나로 꼽히고, 이집트와 튀니지 역시 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시청자층을 갖고 있다.
아프리카 음악이 대륙 전역에서 더 큰 방송 무대를 얻고 있다.(사진: Museruka Emmanuel, CC BY-SA 4.0, Wikimedia Commons)
◇ 18명의 아티스트, 90일간 9개국 촬영
이번 시즌은 90일에 걸쳐 르완다·남아공·카메룬·코트디부아르·이집트·모로코·세네갈·가나·튀니지 등 9개국을 돌며 18명의 아티스트 초상을 완성했다. 랩부터 일렉트로, 그나와, 알앤비, 아수프, 플라멩코, 마흐라가나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코트디부아르의 안디 에스와 토토 르 반주, 르완다의 안젤 무토니, 카메룬의 아자 안드레아, 튀니지의 아주 티왈린, 세네갈의 파다 프레디, 모로코의 이주란 은사하라, 이집트의 모하메드 아보제크리, 가나의 산트로피, 남아공의 도프 세인트 주드 등이 이번 시즌에 소개됐다.
연출을 맡은 댄 아사야그 감독은 이번 시즌 촬영 과정을 두고, 르완다 랩퍼 안젤 무토니의 목소리와 흐름, 카이로에서 만난 모하메드 아보제크리의 우드(전통 현악기) 연주 실력이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야운데든 케이프타운이든 "음악은 음악"이라며, 스튜디오에서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과정이 실험하고 즐기는 실험실 같았다고 전했다.
◇ 2020년 예술가 초상에서 스포츠, 그리고 음악으로
이아프리카는 2020년 2월 처음 시작됐다. 링갈라어로 "오늘의 아프리카"를 뜻하는 이 시리즈는 첫 시즌에서 10개국 39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했고, 2회 시즌에서는 화가·사진작가·조각가·안무가·디자이너 등으로 소개 폭을 넓혔다. 3회 시즌은 2024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12개국 28명의 신진 스포츠 선수들에게 초점을 맞췄는데, 이 중 15명이 실제 파리 올림픽·패럴림픽에 출전해 메달 7개를 합작했다. 특히 1회차에 소개됐던 케냐 육상선수 서배스천 키마루 사웨는 지난 4월 런던마라톤에서 1시간59분30초라는 기록으로 2시간의 벽을 깨며 우승했고, 5회차에 소개된 티기스트 아세파도 여자 마라톤 세계기록을 2시간15분41초로 경신했다.
이번 네 번째 시즌에 와서야 처음으로 시리즈 전체가 음악에만 집중했다. 아프리카 15개국 방송망에 걸쳐 방영되며 소셜미디어 조회수는 3개 시즌 합계 1억3000만 회를 넘어섰다. 유튜브 채널은 2022년 11월 개설 이후 36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페이스북 팔로워는 2023년 7월 개설 이후 80만 명을 넘어섰다.
◇ 통신사가 문화 후원자로…가입자 충성도와 맞물린 전략
이 프로젝트에는 예술적 의도만큼이나 사업적 논리도 깔려 있다. 오랑주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음악에 목마른 수백만 명의 청년층에게 통신·데이터 서비스를 판매하는 기업이다. 인기 있는 음악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다지는 동시에 이 고객층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통신사들이 이처럼 뜻밖의 문화 후원자로 자리매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팬들이 음악을 스트리밍하고 공유하고 다운로드하는 과정에서 음악과 모바일 데이터 소비가 서로를 끌어올리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통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여러 사업자가 자체 콘텐츠 제작에 뛰어드는 흐름도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시기도 절묘하다. 아프로비츠와 아마피아노 같은 장르가 아프리카 대륙의 사운드를 세계 차트에 올려놓으며 아프리카 음악은 지금 국제 무대에서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국내 방송이 다음 세대 스타를 발굴하는 통로 역할을 하면서, 국제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 자체를 강화하는 셈이다. 나이지리아와 남아공 아티스트들은 이제 본국을 벗어난 지역에서도 공연장을 매진시키고 있고, 스트리밍은 한때 아프리카 음악을 자국 시장에만 머물게 했던 장벽을 허물고 있다.
◇ "북과 남이 실제로 섞이는가"…성패는 다음 시즌에
북아프리카 음악 신은 그동안 언어와 역사, 지리적 차이로 인해 사하라 이남과는 별개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확장은 이런 구분을 무너뜨리고 아프리카 음악을 하나의 큰 흐름으로 보려는 문화적 선언이기도 하다. 북아프리카의 팝과 라이(rai), 힙합은 저마다 확고한 팬층을 갖고 있는데, 이들을 같은 프로그램 안에 끌어들이면 사하라를 넘나드는 새로운 협업이 촉발될 수 있다는 기대다.
이번 시즌의 성패는 시청률만으로 가늠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프로그램이 발굴해내는 새로운 아티스트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이남 음악 신이 실제로 섞이기 시작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모델이 성공을 거두면 다른 플랫폼으로도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