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익스트랙션', 칠레 사례로 본 채굴의 딜레마
짐바브웨·나미비아·가나 등 아프리카에도 같은 질문
[넥스트포스트=박해도 전문위원]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저장장치의 핵심 원료인 리튬. 기후 위기를 늦추기 위한 이 금속을 캐내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생태 파괴를 낳는다면, 그 모순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정치학자 테아 리오프랑코스의 신간 '익스트랙션: 그린 자본주의의 최전선(Extraction: The Frontiers of Green Capitalism)'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저자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칼리지 정치학과 부교수이자 기후공동체연구소 공동대표, 트랜스내셔널연구소 연구원이다. 책은 칠레에서 진행한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리튬 채굴에 관심이 쏠리는 나미비아·탄자니아·짐바브웨·나이지리아·가나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질문을 던진다.
◇ "채굴은 탄소중립 세계의 물질적 토대"
저자는 채굴이 탄소중립 세계를 지탱하는 물질적 토대라는 점에서, '그린 자본주의'라는 말 자체가 형용모순처럼 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인프라조차 향후 10년간 수백 개의 대규모 광산을 새로 파야 한다면, 자본주의가 어떻게 진정으로 친환경적일 수 있느냐는 문제의식이다.
다만 저자는 채굴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낫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한다. 전기차는 주행 중 배출가스를 내지 않지만, 금속의 채굴과 가공, 충전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는 탄소가 배출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그래서 리튬을 비롯한 핵심 광물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채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칠레 북부 사막의 아타카마 염호에서 이뤄지는 리튬 채굴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곳에서는 지하 브라인(염수)에 풍부하게 매장된 리튬을 뽑아내 증발지에서 최장 2년에 걸쳐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식이 쓰인다. 저자는 광산업체들이 브라인을 환경적 가치가 없는 물질처럼 묘사하지만, 실제로는 이 염호 생태계 전체를 지탱하는 핵심 구성 요소라는 과학적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이는 탄소중립을 향한 인류의 미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강조한다.
◇ 아프리카는 다른 방식…경암 채굴이 대세
브라인 방식과 달리, 아프리카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리튬을 함유한 암석을 분쇄한 뒤 정제하는 경암 채굴 방식이다. 미국지질조사국에 따르면 아프리카는 2018년 세계 리튬 생산량의 약 2%에 그쳤지만, 짐바브웨·나미비아·말리·가나·콩고민주공화국(DRC) 등에서 탐사와 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아프리카에너지위원회 집계로는 2024년 아프리카 대륙의 리튬 생산량이 12만4230t에 이르렀고, 확인된 매장량은 세계 전체의 약 5%인 2670만t 규모로 추산된다.
문제는 채굴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환경·사회적 부작용이다. 국제 환경단체 글로벌위트니스는 짐바브웨 산다와나 광산에서 수천 명의 영세 채굴자들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일하다 붕괴 사고로 매몰되거나 아동노동에 동원된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나미비아 우이스 광산에서는 중국계 기업이 뇌물을 통해 채굴권을 취득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짐바브웨에서는 리튬 채굴로 인한 수질 오염이 인근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보고도 나온다.
◇ 원광 수출 금지로 대응하는 아프리카 정부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원자재를 그대로 수출하는 대신 현지 가공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다. 나미비아는 미가공 리튬·코발트·망간·흑연·희토류 수출을 금지했고, 짐바브웨도 원광 형태의 리튬 수출을 제한하며 현지 정제를 요구하고 있다. 가나는 오는 7월부터 대형 광산업체 금 생산량의 30%를 국가가 매입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등, 자원을 자국 산업 발전의 토대로 삼으려는 흐름이 대륙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이 실제 효과를 내려면 정제 인프라 구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짐바브웨는 원광 수출을 금지했지만 정작 국내 정제 시설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짐바브웨 마핑가산업단지에는 4억5000만달러 규모의 정제소가 건설되고 있고, 현재 아프리카에서 배터리급 화학 정제가 가능한 곳은 모로코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 "기후 위기가 채굴의 영향을 더 키운다"
저자는 기후 대응이 더 많은 채굴을 요구한다면, 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자연의 혜택과 얽힌 인류의 굴레에서 벗어날 단 하나의 묘책은 없으며, 오히려 리튬 채굴이 늦추려는 바로 그 기후 위기로 인해 채굴의 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저자 스스로 표현했듯, 이는 "탈출구 없는 딜레마"다.
-『익스트랙션: 그린 자본주의의 최전선』 테아 리오프랑코스 지음 / 아이콘북스
넥스트포스트 박해도 전문위원 pooksi@next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