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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에서 완제품으로, 아프리카 가치사슬을 다시 짠다

황상욱 기자 | 입력 : 2026-07-06 13:59

엘롬비 총재, 배터리·결제망·의료연구 3대 우선순위 제시
PAPSS 28개국 확장 속 스테이블코인과 경쟁…S&P 투자등급도 획득

[넥스트포스트=황상욱 기자] 아프리카수출입은행(아프렉심은행)이 지난 30년간 이어온 '아프리카 무역의 최종 대부자'라는 역할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조지 엘롬비 아프렉심은행 총재는 나이지리아 아부자 소재 아프리카무역센터(AATC)에서 열린 중간 언론 브리핑에서, 광물 가공 밸류체인에서 아프리카의 위치를 끌어올리고, 스테이블코인과 경쟁하는 대륙 결제 시스템을 심화시키며, 현재 해외 병원에 수출하다시피 하는 의학 연구 역량을 자체적으로 구축하겠다는 세 가지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아프리카무역센터(AATC)에서 열린 아프렉심은행 중간 언론 브리핑 참석자들. /아프렉심은행
아프리카무역센터(AATC)에서 열린 아프렉심은행 중간 언론 브리핑 참석자들. /아프렉심은행
◇ "원광 수출만 하는 곳엔 투자 안 한다"

엘롬비 총재는 전기 모빌리티 기업 스피로와 통신 인프라 기업 리퀴드텔레콤에 대한 최근 투자를 두고, 이 결정이 아프렉심은행 대표단의 상하이 출장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배터리·전기차 공급망을 둘러본 이 출장에서 그가 주목한 것은 제조 규모가 아니라 배터리의 구성 방식이었다. 그는 배터리가 하나의 복합 블록이 아니라 수백 개의 작은 원통형 셀로 조립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전했다.

이 경험은 아프리카가 익숙한 패턴을 반복할 위험이 있다는 그의 판단을 굳혔다. 원자재를 수출하고 완제품을 수입하는 구조다. 엘롬비 총재는 "이제 리튬을 원광 상태로 채굴해 수출하려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며 "국내에서 채굴하고 가공하는 사람들만 원한다"고 말했다. 이 원칙은 이제 은행의 광물 부문 거래 심사 기준이 됐다. 순수 채굴 사업이 아니라 현지 가공 권리를 확보한 사업자에게만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논리가 데이터센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아프리카가 계속 해외에서 조달할 여유가 없는 인프라라는 설명이다.

◇ PAPSS, 190개 은행 연결…그러나 도입은 더뎠다

이번 브리핑에서 기술 관련 논의는 대부분 범아프리카 결제·정산 시스템(PAPSS)에 집중됐다. PAPSS는 아프렉심은행이 2022년 출범을 도운 국경 간 결제망으로, 엘롬비 총재는 은행의 법무·거버넌스 부문을 이끌던 시절 이 시스템 개발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각국 중앙은행이 자신들의 규제 권한을 침해할 것이라는 초기 우려 때문에 도입 속도가 예상보다 더뎠다고 인정했다.

PAPSS는 현재 아프리카 28개국에 걸쳐 190개 이상의 상업은행과 핀테크 기업을 연결하고 있다. 은행 측은 이 수치를 상한선이 아니라 최소선으로 본다고 밝혔다. 아프렉심은행 자체는 약 600개 아프리카 상업은행과 환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은행 측은 결제 플랫폼이 임계 규모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으려면 이 정도 규모에 근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엘롬비 총재는 서아프리카를 첫 시범 지역으로 택한 이유를 통화 구성과 서아프리카통화동맹을 통한 기존 통화 통합에서 찾았다. 다만 이 선택이 다른 지역에서 "서아프리카가 범아프리카 이니셔티브를 가로챘다"는 의혹을 키웠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런 인식은 약 2년간 다른 지역의 도입 속도를 늦췄고, 이후 은행은 해당 지역 중앙은행 총재들을 플랫폼 감독위원회 참관에 초청하기 시작했다.

PAPSS가 가장 자주 인용되는 활용 사례로는 통화 스와프 기능이 꼽힌다. 기업이 제3국 통화를 거치지 않고 누적된 현지 통화 보유분을 상계할 수 있는 기능이다. 항공사가 나이지리아 외환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고 나이라와 에티오피아 비르를 맞바꿔 채무를 정산하는 방식이 대표적 사례로 제시됐다. 선호 통화로 네트워크 전역에서 결제할 수 있는 PAPSS 브랜드 카드도 개발 중이지만, 발급을 담당할 법인은 최근에야 인력 채용을 시작한 단계다.

◇ 스테이블코인, 적이 아니라 동반자로

나이지리아는 국경 간 결제에서 스테이블코인 채택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다. PAPSS가 이런 흐름 속에서 버틸 수 있느냐는 질문에 엘롬비 총재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실물 자산으로 뒷받침되는 스테이블코인은 진정한 신뢰를 쌓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은 검증대에 오르면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더 큰 승부수는 아프리카 통화들이 영원히 분절된 채로 남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프렉심은행의 전략은 하위 지역 결제 시스템을 먼저 심화시키고, 이것이 결국 지역 통화로, 더 나아가 대륙 통화로 통합될 것이라는 기대에 근거한다. 그 시점이 되면 아프리카 기반 디지털 통화가 지금의 국가별 통화 파편화 속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미를 갖기 시작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스테이블코인을 위협으로 보기보다, 은행이 신뢰할 만한 프로젝트와 함께 일하고 싶어한다고도 밝혔다.

◇ 7500만달러 겸상적혈구 연구기금…최대 난제는 인력

이번 브리핑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아프렉심은행이 런던 킹스칼리지병원과 함께 지원하는 아부자 소재 아프리카의학우수센터(AMCE)에 대한 질문에서 나왔다. 엘롬비 총재는 이 시설에 7500만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아프리카생명과학재단이라는 연구센터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이 재단은 방문 혈액학자 모프티 교수의 주장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환자를 치료만 하고 치료 반응을 연구하지 않으면 과학적 통찰과 수익 모두를 해외 연구센터에 넘겨주는 셈이라는 문제의식이다.

재단의 첫 연구 대상은 아프리카계 인구에 불균형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겸상적혈구병이다. 아프리카질병통제센터 전 국장이 재단을 이끌며, 나이지리아 의대 교수진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함께한다. 엘롬비 총재는 병원의 가장 큰 제약이 장비나 자본이 아니라 인력, 특히 수십 년간 해외에서 삶과 경력, 가족을 꾸려온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전문의들을 대륙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일이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은행의 접근법은 서비스 라인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임상의를 단계적으로 확보한 뒤에야 해당 역량을 공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카메룬과 탄자니아에도 추가 AMCE 시설을 검토 중이며, 이 모델을 나이지리아를 넘어 확장할 계획이다.

◇ S&P 투자등급 획득…자산 49조원 돌파

엘롬비 총재는 최근 S&P글로벌레이팅스로부터 받은 투자등급도 언급했다. S&P는 아프렉심은행에 장기 BBB+, 단기 A-2 발행자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그는 "이는 아프리카 기관을 적절한 맥락에서 평가하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번 등급 평가는 아프렉심은행의 2026년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나왔다. 총자산 및 우발채무는 494억달러로 늘었고, 자기자본은 86억달러, 자기자본비율은 23%, 부실채권비율은 2.40%를 기록했다.

배터리와 결제, 의료라는 세 축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명확하다. 아프리카산 원자재를 해외로 흘려보내는 무역금융에서, 가치를 대륙 안에 묶어두는 인프라와 결제 시스템, 연구 역량에 자금을 대는 쪽으로 은행 스스로의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시도다. 이 승부수가 성공할지는 엘롬비 총재 스스로 지적한 실행 과제들, 즉 PAPSS의 도입 병목 해소와 광물 가공 사업의 전문인력 확보 경쟁, 그리고 대표 병원이 전문의를 실제로 불러들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넥스트포스트 황상욱 기자 andrew@next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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