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포스트=황상욱 기자] 수도관이 동네 옆을 지나가지만 집 안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아크라 외곽 저소득층 주민들에게 물은 매일 아침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최근 국제학술지 국제환경연구공중보건저널(IJERPH)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가나 수도 아크라 인근 4개 외곽 저소득 지역에서 조사 대상 가구의 약 60%가 다양한 수준의 식수 불안정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는 2025년 초 오야리파, 테이만, 크웨이만, 단파 4개 지역 저소득 가구의 주요 구매 담당자 4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응답자의 67%가 여성이었고, 65%는 중학교 이하의 학력 수준이었다.
위 이미지는 생성형 AI를 활용하여 연출된 가상 이미지입니다./넥스트포스트
이들이 식수로 주로 쓰는 것은 비닐 봉투에 담긴 비규제 상품인 새쳇 워터(sachet water)였다. 응답자의 77%가 비닐 봉투 물을 주요 식수원으로 꼽았다. 가나 수도회사(GWCL)의 수돗물이 공식적으로 공급되더라도 공급이 불규칙하고 단수가 잦아 주민들은 공식 공급 체계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물 판매상에 의존하는 구조가 일상화돼 있다.
빈곤층이 물에 쓰는 돈은 오히려 부유층보다 많다는 역설도 드러났다. 파이프 수도를 집에서 직접 쓰는 가구는 비용이 낮지만, 물 판매상에서 사는 주민들은 단위 수량 기준으로 훨씬 높은 금액을 지불한다. 정책학자 콰쿠 아이누손의 연구에 따르면 아크라 저소득층의 약 3분의 2가 집에 파이프 수도가 없는 반면, 부유층 가구에서 이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저소득 지역 주민들이 물을 구하는 데 직면하는 장벽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금전적 여유 부족, 물 공급 지점까지의 거리와 이동 시간, 지형과 토지 조건, 노후화된 수도 인프라가 그것이다. 특히 건기에는 이 모든 조건이 동시에 악화되면서 어려움이 두 배로 커진다는 게 주민들의 공통된 경험이다.
아크라 도심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해변가를 따라 형성된 아크라 도시 슬럼 지역 연구에서는 물 불안정이 정신 건강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우리는 병을 마시고 있다"는 주민들의 말이 연구 제목이 됐을 만큼, 물 부족이 야기하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불안이 일상화돼 있다.
아크라의 물 불평등은 단일 원인의 문제가 아니다. 농촌과 주변국에서 아크라로의 인구 이동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수도 인프라 확장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나는 국가 부채 문제로 공공 인프라 투자 여력도 제한된 상태다. 여기에 식민지 시대 도시 계획의 유산이 현재까지 공간적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거 도시 개발 과정에서 저소득층이 집중된 비공식 정착지 지역은 공식 수도망 연결에서 체계적으로 소외돼왔다.
2023년 가나 정부가 도입한 병물 및 음료 20% 종량세도 예상치 못한 영향을 낳았다. 비닐 봉투 물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는데, 이로 인해 저소득층이 비규제 상품에 더욱 의존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이 낮은 비닐 봉투 물을 택하면서 안전성이 낮고 검증되지 않은 물 소비가 늘어나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났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 6번은 2030년까지 모든 사람이 안전한 식수와 위생을 보장받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크라 외곽 저소득 지역의 현실은 이 목표와의 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데이터상으로는 식수 접근율이 개선됐다고 나오더라도, 그 통계에는 저소득 지역의 비공식 물 공급 의존이라는 현실이 숨겨져 있다고 지적한다. 수도관이 지나가는 것과 물이 실제로 집에 들어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